쿠바에서 도시 간 이동은 관광객용 버스도 있지만 십불 정도 비싼긴 한데 택시가 가장 편리하다. 카사에서 카사로 데려오고 데려다 주기때문에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 거릴 필요도, 길을 잃을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트리니나드를 떠나면서 카사 주인이 비날레스의 친구 카사를 소개시켜줬다. 트리니나드에서 하바나까지는 5시간. 하바나에서 비날레스까지는 2시간 반이 걸린다. 트리니나드에서 승용차를 타고 출발하다 하바나 인근의 고속도로 상에서 갑자기 기사가 내리란다.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다른 차 몇대가 근처에 슨다. 승용차에 내린 관광객들을 모은 다음. 하바나로 갈 사람. 비날레스로 갈 사람 그리고 베라데로로 갈 사람을 추리더니 다시 각각 다른 택시와 승합차에 태운다. 비날레스로 가는 봉고차 같은 노란색 택시에 탔는데 어제 트리니나드에서 본 낯이 익은 관광객의 얼굴도 보인다.
다시 두 시간이 지나 비날레스 골짜기로 들어 가는 입구에서 기사 뒷자리에 앉아 있던 기사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가 말을 건다. 어느 까사로 가냐고. 그래서 주소를 보여줬더니 자기 조카가 하는 카사가 있는데 거기로 가는건 어떻겠냐고 묻는다. 뭐.....어딘들... 어짜피 주소를 받은 까사도 모르는덴데. 오케이라고 했다. 본인은 국영 택시 회사에 다니는데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이라고. 자기 부모님이 가장 좋은 농장을 가지고 있으니 비날레스에 머무는 동안 놀러오라고. 내가 머물 카사 주인인 조카한테 말하면 데려다 줄꺼라고 하더라. 비날레스는 처음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자 이 동네 뷰가 좋은 호텔이 양 골자기 끝에 있는데 조카가 그 중 하나 호텔의 매니저니까 그 호텔에도 구경가보라고 했다.
이번 쿠바 여행의 모토가 "go with flow" 아님 "되는 대로"여서, 경계심이 들 정도로 안전에 문제가 있겠다 싶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냥 들어오는 인연에 따라 하루 하루를 보냈다. 계획 따위가 전혀 없으니 길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하루 체험이 달라지는 건데. 쿠바에 와서 일주일 동안 좋은 인연이 많이 들어왔고 순순히 운 좋게 하바나와 트리니나드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서 비날레스에 들어가는데도 설랬다. 이 곳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날 까....
소개 받은 카사에 가봤더니 택시 기사의 누님의 가족이였는데 결혼한 조카 부부와 아이들이 같이 사는 집이였다. 집도 깔끔하고 동네 메인 길하고도 가깝고 나쁘지 않았다. 조카의 와이프는 나와 동갑. 영어가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그녀와 제법 수다를 떨수 있을 정도는 됐다.
비날레스는 시가로 유명한 쿠바에서도 최상의 담배잎을 생산하는 담배 농업의 중심지다. 땅이 불그스름한 진흙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농사가 잘될 것 처럼 비옥해 보였다. 예전에는 쿠바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을 중심으로한 시골이였던 피나 델 리오 지역의 서늘하고 풍경좋은 비날레스는 뉴욕 타임즈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할 관광지로 꼽힐만 큼 더운 쿠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어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었다.
비날레스 계곡에는 석회암 지형이 융기한 분지라서 마치 제주도의 오름을 보듯이 들판에 높은 산이 뜬금없이 하나 훅 솟아 있다. 한국에서 산이라 함이면 연속적으로 봉 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비날레스 계곡엔 국 그릇을 엎어 놓은 느낌의 융기한 산들이이 있다. 마치 제주도의 오름처럼. 산 들 사이로 담배 밭과 담배를 말리는 건초로 지어진 건물이 여기 저기 보여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인다. 깨진 도로에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클레식 카가 거리를 매우는 하바나가 흥이 넘치지만 혼란스러운 아수라 장이라면, 식민지 시대의 아기자기한 파스텔 톤 건물이 언덕배기에 옹기조기 모여있는 트리니나드는 새침때기 같은 정갈한 맛이 있다. 반면에 비날레스는 거슬 거슬 투박하고 흙냄새가 나는 정겨운 시골 느낌이다.
세 도시 중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하면 비날레스를 꼽겠다. 내가 뉴욕에서 와서 그런가 하바나의 정신없음보다는 사람들이 소근 소근하고 해가 지면 칡흑 같아서 별이 쏟아지는 걸 볼 수 있는 비날레스가 더 정겹게 느껴졌다. 카사 앞 패티오에 놓인 흔들 의사에 앉아 있으면 앞집 옆집에서 뭐하는지 다 들리고 보인다.
더운 지방이라서 그런지 쿠바의 모든 집은 개방형인데다가 범죄율이 낮아 서인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 탓 인지 항시 문을 열어 놓고 산다. 집 앞에 흔들의자를 놓고 앞집 옆집과 고함을 치며 대화를 한다. 나도 밥먹고 하바나 클럽에 얼음하나 띄워서 패디오 흔들의자에 앉아, 우리 카사 애기 엄마가 길 맞은 편 앞집 아줌마랑 큰 소리로 수다를 주고 받는걸 구경했다. 거실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는 알아 듣지 못하는 쿠바 방송이 웅얼 웅얼 BGM 처럼 깔리고, 주인 집 3살 배기 딸래미는 동양인이 내가 신기 한지 자꾸 내 무릎에 안겠다고 칭얼 거려서 앉아 줬더니 애기 냄새가 뽀앟게 올라와서 좋다. 동네가 작은 시골이라 가로등도 많이 없어서 해가 지니 밤이 까맣다. 하늘에 별이 쏟아 진다. 아 행복해. 방학마다 내려가던 임실 외갓집 동네가 생각났다. 아 평온하다. 비날레스에 오기 잘했구나.
다음 날 아침 큰 길로 나갔는데 트리나다에서 삼일 전에 만났던 이스라엘 커플을 만났다. 10년 사귀고 얼마 전에 결혼해서 신혼여행으로 남미를 3개월간 여행한다는 성격 좋은 커플이였다. 이 것도 인연이라고 같이 동네 근처를 하이킹 가자고 해서 혼자 심심했는데 올타쿠나 하고 조인했다.
남편은 군수업체에서 일하는 엔지니어고 아내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라는 사랑스러운 커플과 비날레스 마을 뒷편의 밭이며 산 길을 돌아 다니다가 시가 농장 중 하나에 들러 농부 아저씨가 투박하게 만들어 주는 피나콜라다를 마시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히피 같은 청년이 엄마 같은 중년의 여성과 함께 나타났다. 이모와 여행 중이라는 30대 초반의 이스라엘 미남 오빠는 같은 이스라엘 커플을 만나서 반가 웠는지. 자기는 비날레스에 세 번째이고 처음에 왔을 땐 한 달을 머물러서 아는 친구가 많다고 했다. 그는 30년 간 개인 정원을 가꾼 자매의 개인 정원을 안다며 자기가 다음 날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우왕 ㅋㅋㅋ 론니플레넷에도 없는 꿀정보. 개.이.득.)
다음 날 정말 마을의 귀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집에 집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구경을 가봤더니. 정말 열대 우림이 우거진 엄청 큰 개인 정원이 나타난 것이다. 화려한 열대의 꽃과 엄청난 굵기과 높이의 나무들이 빽빽한 게 내가 아마존은 안가봤지만 정글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 생각이 들었다. 두 자매가 결혼도 안하고 꽃과 나무를 심고 30년 동안 이 정원을 가꾸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 낮이였지만 햇볓이 들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우거진 아무도 없는 개인 정원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이스라엘 미남 히피와 단둘이 있다. 기분이 꽁냥 꽁냥. 갑자기 소나기기가 쏟아졌다. (진심 깜놀. 영화같았다. 곰방 해가 쨍쩅했는데) 둘이 낮은 나무 밑으로 비를 피했는데. 비를 맞은 땅에서는 쿵쿵한 흙냄새가 올라오고. 비를 맞은 티셔츠에서는 뽀얀 살냄새 올라오고 가슴이 콩닥콩닥. 갑자기 이스라엘 오빠가 박력있게 키스르....
이거 실화다. 자작 아니다. 그냥 나도 어리둥절하게 로맨스 영화를 찍어 버렸다. 날씨에 배경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오늘이 비날레서에서 묵는 마지막 날이라고 자기에게 여행 비용을 대주고 쿠바 여행 안내를 부탁한 이모와 같이 먹어야 한다고 안된다고 거절했다. 쳇.. 저녁에 카사 가족과 식사를 하고 카바나 클럽을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약간 알딸딸하게 취해서 일찍 잠에 들었더니 자정 넘어 누가 내 방문을 똑똑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어렴풋이 잠결에...흠. 이스라엘 청년이군. 그러게 저녁 같이 먹자니까... 아이야 기차는 떠났고 넌 너무 늦었단다하고 귀찮아서 그냥 잠듬. 이렇게 나의 비날레스 로맨스는 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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