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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er

영국에서 온 Jeremy 아저씨

Casa Blanco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Trinidad에 도착한 후, 제레미가 그날 저녁에 초대했다. 뭐 나도 일행이 없으니 my pleasure.

지은 지150년이 넘은 스페인 식민지풍 고택의 조명이 은은한 마당에서 쿠바 음악가들의 달달한 연주를 들으며 단정한 양복을 입은 웨이터 아저씨의 서빙을 받으며 저녁을 먹으니 완전 이국적인 로맨틱한 느낌이 들었다. 제레미 아저씨가 멋진 20대 남자였음 더욱 더 좋았겠지만;;;;; 다 가질순 없는 법.

글로벌한 자동차 회사의 PR 이사로 회사 돈으로 파티, 골프, 출장, 이벤트를 많이 접해 본 분이시고, 영국식 sarcastic한 위트가 빛나는 지적인 작가인 제레미 아저씨도 충분히 즐거운 저녁 데이트 상대였다.

밤은 깊고 헤밍웨이가 좋아했다는 칵테일 다이키리(Daiquiri)로 알딸딸해지려는 찰라,

제레미 아저씨가 말했다.

"오늘 너와의 대화는 즐거웠어. 사실 내가 쿠바에 오게 된 것은 이혼을 결심하기 위해서 였어. 사실 나에게는 2년을 만난 여자 친구가 있어. 아내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아니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 나는 아내를 떠날까해."

그 날의 대화에서 나는 제레미가 일본 자동차 회사 PR 매니저 자리에서 해고 당한 후 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로 모든 재산을 잃었고. 런던의 비싼 월세가 감당이 안되서 3시간 거리의 버밍햄으로 이사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위스 사람과 결혼해서 이태리에서 살고 있다는 나와 동갑인 큰 딸은 불행한 결혼 생활 중이라는 것과,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으로 30년을 같이 산 아내는 평생 자기가 가꿔온 수영장이 딸린 멋진 정원이 딸린 런던의 집을 제레미가 잘못된 투자로 날렸고 좁고 햇볕도 안드는 버밍험 촌구석의 작은 집으로 쭈그러든 본인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에 걸려 집 밖에 안나가고 티비만 본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최근 이혼을 했는데 푸드 스타일리스트야. 그녀는 이혼 후에서 집에서 못나오고 있어. 남편 집의 넓은 주방이 본인 케이터링 사업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야. 2년 동안 사랑한 그녀가 나에게 이혼하고 자신과 새로운 집을 얻어서 새롭게 시작을 하자고 하더라. 아니면 그만 만나자고 통보를 해왔어."
"나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아. 그런데 아내는 의존적인 성격이야. 경제적 능력이 없어. 항상 내가 모든 걸 다 해결해 줘야 했어. 아내에 대한 열정적 사랑은 식었지만 그래도 애들 엄마고 나와 가장 오래산 내 인생의 친구야. 내가 그녀를 떠나면 아마 우울증이 더 심해 지고 혼자 못 살거 같아서 걱정되. 아내도 이미 눈치는 챈거 같은데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척 하는거 같아."
"어릴 때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어. 누나도 때렸어. 술만 마시면 집에 와서 행패를 부렸어. 난 너무 화가 났어. 어린 내가 상대하기에는 아버지가 무서웠거든. 엄마를 지키지 못했던 나는 무력했어. 무기력하고 무능한 나에게 화가 났어. 내가 살던 고향은 정말 가난했어. 그 고향을 떠나고 싶어서 런던으로 대학을 왔는데 당시 여자 친구인 아내도 그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 했어."
"우리는 가난하게 시작했지만, 다행이 내 커리어가 승승장구 했지. 80년대 90년대 영국 경제가 잘나가던 시절 자동차 회사 PR 매니저로써 나는 정말 멋진 삶을 누렸단다. 샴페인이 가득한 파티, 비즈니스 석을 타고 다니던 출장. 멋진 저널리스트 친구들... 그러다 나는 모든 걸 다 잃었어. 그래도 내가 잘했던 건 글쓰기였기 때문에 여행 블로그를 시작했어. 책도 내고 싶은데 생각 보다 돈벌이가 안되고 있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예전 친구와도 모두 연락을 끊었어"

별이 총총 보이는 트리니나드의 100년 넘은 콜로니얼 풍 스페인식 멘션 중정에 차려진 레스토랑에 앉아 영국에서 온 중년 아저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자존심 강해 보이는 이 아저씨가 나에게 이렇게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면서 솔직해질 수 있는 이유는 내일 하바나로 떠나기 때문일거다. 제레미 아저씨가 다시 안 볼 동양에서 온 왠 여자애여서 가볍게 이야기한 거겠지. 낯선 여행지의 분위기에 취해 그런걸까, 하루 종일 수영을 하고 피곤한 몸에 마신 칵테일에 취한 걸까, 아님 내가 잘 들어 줄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서로 다른 배경과 나라와 문화에서 왔지만 아저씨와 나는 "진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제레미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요. 힘든 상황이네요. 아저씨가 쿠바로 여행 온건 잘한 선택인거 같아요. 내가 카운셀러는 아니지만 오늘 하루 종일 아저씨와 이야기 하면서 제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을 이야기 해도 될까요?

내가 아저씨를 오늘 처음 봤지만, 오늘 하루 종일 대화를 하면서 아저씨가 이야기 한 아저씨 삶 속의 사람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고, 아저씨의 50이 넘는 인생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가족도 있고 수 많은 친구도 있겠죠? 그런데 오늘 처음보는 나에게 말해줬던 사람들은, 아저씨 인생의 수 많은 사람들 중 편집한, 아저씨한테 중요한 사람이거나, 혹은 최근 아저씨의 일상에 자주 만나거나, 맘이 자주 쓰이거나, 아무튼 최근 가장 유의미한 사람들이겠죠?"

"그렇지"

"아내, 애인, 엄마, 누나, 딸, 그리고 친구 (필리핀에서 온 동네 친구인데 abusive한 남편이랑 살면서도 영국 비자 문제 때문에 이혼을 못해서 아저씨가 안타까워했음) 오늘 아저씨와 저와의 대화에서 등장한 6명에게 공통점이 있다는거 알고 계세요?

"그게 뭔데?"

"불행한 결혼 생활"

"아저씨 애인도 이혼할 만큼 결혼 생활이 싫었고, 아저씨와 바람을 핀거죠? 최근에 이혼 도장을 찍었지만 결국 경제적인 능력이 안되서 전남편 집에서 못나오고 있자나요. 필리핀 친구도 그리고 아저씨 부인도 경제적으로 남편에 의존적이라 불행한 결혼 생활을 참고 있고. 아저씨 딸도 비슷한 상황인거 같고. 아저씨 엄마와 누나도 그랬네요."

"제가 심리 상담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학대 당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엄마를 돕지 못했던 무기력하던 소년 제레미가 성인이 되어서도 가장 마음에 쓰이는 상대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참는 여자들이였네요."

갑자기 아저씨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허걱-.-;;;;;)

자기도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니 말이 맞구나 하시면서 우시는 거다. (당황 당황;;;;;; 안절부절)

그러더니 자기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애인을 사랑하는데 자기도 그 여자가 사업에 필요한 큰 주방이 있는 집을 사서 살림을 합칠 형편이 안되고, 아내도 자기 없으면 정신적으로 폐인이 될거 같고. 딸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런데 애인은 결정 안하면 떠날꺼라고 최후 통첩을 날렸고. 자기가 여행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향후 인생을 어떻게 살지 결정하려고 쿠바에 온다니까 아내도 곧 이혼 이야기가 나올꺼 같아서 두려워하면서 곱게 보내줬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압니까!!! 아저씨 인생인데!!!!'

오늘 밤 뜻하지 않는 심리학자 빙의에 '방언'이 터지 듯이 아저씨한테 말했다.

"음 아저씨 말대로 이혼하고 애인이랑 살고 싶었음 굳이 쿠바까지 도피해 올 필요는 없는거 아니예요? 쿠바에 왔다는 게 바로 답 아닐까요? 아저씨는 결정하기 싫다는거."

"그냥 아무 결정도 하지 말고 현 상황을 지켜보세요.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니까. 제 생각에 애인도 아저씨 안 떠날거 같고, 아저씨 이혼도 못할 거 같아요. 그러니 다른 생각이 찾아올 때까지 가만히 숨만 쉬세요. 아무 행동도 취하지 말고....... 그리고 벌어질 다음 상황에 대해서 예민하게 관찰하고 아저씨 마음의 변화도 잘 살펴 보세요. 그 이후에 결정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그 때 무슨 결정이든 하면 되지 않을까요?

"Oh sweetie what a marvelous idea!' 

내가 작두를 탔나 왜 그 순간에 저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날 밤의 분위기가 좋았고, 영국 버밍험에서 온 중년의 영국 남자와 뉴욕에서 온 한국 여자가 쿠바의 시골 트리니나드에서 나눈 어느 "진짜 대화"

 

 

PS. 아저씨는 나와 자신의 하루를 블로그에 올려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고 여행 후 이메일로 자신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내왔다. 문장력이나 스타일은 매끄러운 글이였으나 우리가 나눈 대화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은 빠져있는 매끈한 여행 에세이 블로그였다.

개인적인 터치가 없는 정보 전달성 글을 게재한 아저씨의 마음은 이해는 갔다. 아저씨가 블로그가 생각보다 돈이 안되고 출판사에게 몇 번 출간을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킬 가족과 체면이 있는 아저씨 입장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자신의 에세이에 공개할 수 없을 거다. 그래도 누구나 쓸 수 있는 맨들 맨들하고 세련된 여행 정보 에세이 보다는 자신만의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자신의 취약함을 솔직하게 내세우는 글이 차라리 잘 팔리는 인기 있는 글이 될 수도 있을 수도 있는데....라는 혼자 생각이 들었다.

벌써 2년이 지난 일이고 제레미 아저씨가 어떤 선택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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