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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er

우연: 여행자의 행운

여느 여행객처럼 하바나의 Old Town인 Vieja을 어슬렁 어슬렁 구경하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났다.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가 가장 곤란할 때는 night life를 어떻게 보내느냐 고민할 때다. 여행 책자에 추천된 유명 레스토랑에 한껏 차려 입고 근사하게 저녁을 먹고 싶기도 하고, 동네 클럽도 가보고 싶지만, 혼자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건 뻘줌하고, 낯선 곳에서 늦은 새벽 혼자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돌아올 생각을 하니 클럽도 좀 꺼려졌다.

그래도 오늘이 하바나에서 첫 날인데 그냥 넘길 순 없지. Renso에게 동네에서 젤 좋은 클럽이 어디냐 하니 지도에서 한 지점을 가르친다. 집앞 케피톨 근처 중앙 공원에서 Renso가 적어준 클럽 이름을 들고 수많은 쿠바노 관광객과 함께 합승할 Taxi를 잡으려고 했으나,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는 택시 기사에게 합승 가능하냐고 물을 용기도, 스페인어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 30쿡이라는 말도 안되는 금액을 부르며 개떼 처럼 몰려드는 택시 삐기들을 상대 하기도 지쳤다. 그래도 다시 숙소로 후퇴...

Renso가 다른 방향의 큰 길에서 택시를 잡으라고 알려 준다. 지나가던 택시를 잡고 주소를 내미니 7쿡이란다. 한 시간 거리의 공항에서도 20불인데 십 분 거리가 7쿡이라... 뭐 어쩌랴... 그런데 막상 클럽에 가보니 수요일이라 문을 닫았단다. 하긴 Renso는 50대 주민인데 클럽을 가봤겠음.... 난감해 하는데 택시 아저씨가 Casa de La Musica에 가면 된단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겠다만 이번 여행의 테마 "Again Go with the Flow." 그냥 그리로 가자고 했다.  

한 십분을 교외 외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쿠바의 전력 공급이 좋지 않은 지라 시내를 벗어나자 가로등 하나도 없는 칠흙같은 어둠이 펼쳐 졌다. 쿠바 사람들이나 미국에 있는 쿠바 친구들한테도 쿠바는 범죄율이 낮고 외국인에 대한 범죄는 특히나 엄하게 처벌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기것 해봐야 소매치기지 안전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나는 지금 하바나 늦은 밤에 혼자 택시를 타고 있고 택시 기사가 데려다 주겠다는 이름도 모르고 위치도 모르는 어느 곳을 달리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드니 두려움이 훅 몰려왔다. 나의 안절부절을 느꼈는지 택시 기사 아저씨가 걱정 말라는 손짓을 한다. 그래서 도착한 Casa de La Musica.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공연 시간이 끝나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다음 공연은 두 시간 뒤라는데..... 이미 시간은 늦었고 집에 다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심난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다음 공연을 보자. 뭐 그때 사람들 다 쏟아져 나올텐데 집에 가는 건 어떻게든 되겠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공연장엔 앉을 자리가 없다. 바로 옆에 환한 야외 바 같은게 있어서 들어갔다. 맥주를 한 병 시키고 혼자 멍 망연 자실하게 앉아 있었더니 미아처럼 불쌍해 보였는지 왠 남자에가 영어로 말을 건다.

"넌 혼자 왔니? 어디에서 왔니?"

"나 혼자야. 한국 사람인데 뉴욕에서 왔어."

"여기서 혼자 왜 이러고 있어. 다음 공연은 볼꺼니?"

"두 시간 뒤에 공연이 있는데 나도 모르겠어. 여기가 하바나에서 어디인 줄도 모르고. 집에 어떻게 가야할 지 모르겠어."

"나는 스페인 사람이야 공연을 보고 시내로 돌아가는 길인데 저기 보니 금발의 백인이 있다. 보아하니 영어를 쓰는거 같던데 내가 말 걸어 줄께 재네랑 같이 놀아"

그러고는 백인 두명이 섞여 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poor baby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고 무슨 일있으면 자기한테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를 주고 갔다.

잉!!!!!" 이건 뭐지???????

 

하바나의 미아가 된 나에게 하느님이 보내준 선물??????? 아무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본인들이 뮤지션이라고 하는 일련의 사람들 사이에 앉아 그들이 저녁으로 먹고 있었던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알고보니. 두 금발 남자는 스웨덴에서 온 퍼커션니스트 였고, 일련의 그룹은 쿠바의 퍼커션니스트였다. 그들은 일년에 한번 쿠바의 스승에게 사사를 받으러 하바나를 방문한다고 했다.

"다음 공연은 연주자가 별로야, 우리 페밀리끼리 이층에서 공연이랑 파티를 할껀데 올래?"

헐!!!!!! 이건 뭐지?????

딱히 연주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Casa de La Musica를 온지라 안전해 보이는 수줍 수줍의 다행이도 영어를 쓰는 스웨덴 남자들과 그들의 쿠바 친구들과 그 페밀리의 공연을 보러갔다.

"Unbelievable!!!"

어제 밤에 쿠바에 도착해서 아침에 첫 하바나 거리 풍경도 신기하고 생경했는데. 그 공연장의 쿠바 음악은....... 정말 세상 처음 듣는 스타일와 음색,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쿠바 음악이구나. 왜 전세계 사람들이 쿠바 음악에 열광하는 지 이해가 갔다고 하면 너무 판에 밖힌 Cliché 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민트가 진득하게 들어간 하바나 클럽으로 만든 모히토를 마시며, 열정적이고 세련된 쿠바 음악, 난생 처음 흑인 아저씨 손에 이끌려 밟아보는살사 스텝....... 여긴 누구? 나는 어디? 너무 쒼나!!!!! 쿠바 사람들은 엉덩이 관절뼈가 더 있나봐 어쩜 저리 엉덩이가 유연하게 움직이니 눈 앞에서 보면서도 언빌리버블.....

 그 그룹에서 리더로 보이는 거만한 태도의 아저씨에게 스웨덴 오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굽신 굽신 하실래 누군가 했더니 쿠바하면 떠오르는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인 퍼커셔니스트의 아들이란다. 그 분 왈 자기 누나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가수고 쿠바사람들은 다 아는 국민 가수란다.

헐~~~~ 옴마나? 어쩌다가 이런 우연이??? 나 오자마다 쿠바 최고의 뮤지션 그룹에 초대를 받았지????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나는 완벽한 하바나의 첫 밤을 보내게 됐다. Glow with the flow..... 주문 덕택에

 

2차를 가자면서 (쿠바도 2차가 있구나) 클럽을 가잔다. 리더 아저씨의 번쩍 번쩍한 Mercedes Benz S 시리즈가 위풍 당당하게 짜잔 대기를 타고 있었다.

쿠바에 벤쯔는 3대 밖에 없는데 그 중에 하나가 눈 앞에 보이는 아저씨 차란다.

너무 심각하게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가 감탄하길 바라며 부심 부심하는데 '쯧.... 세상 어느 나라나 남자나 차 부심이란....' 그냥 귀엽더라....

연식이 15년은 돼보이는 법한 각잡힌 구형 모델이지만, 그래도 나는 게스트의 본분에 맞게 이런 어마어마한 고급 차를 타는 영광을 누리는 거에 완전 설레는 척을 하며 기쁘게 앞좌석을 차지했다. 뒤에 5명의 건장한 남자가 구겨서 들어가는 꼴을 웃으며 지켜보며....

오전 하바나 올드 타운을 산책하며 모든 보이는 풍경에서 빈곤함과 너덜너덜함이 느껴 졌다면, 클럽이 있는 동네는 마치 LA 같았다. 주로 하바나 부자들과 외교과 공관이 많은 동네라는데, 매우 깔끔하고 집들이 평수가 큰 멘션이였다. 게다가 길가에 주차해 있는 차량은 낡은 클레식카가 아닌 모두 신형 기아나 현대 혹은 일본 차라서 깜짝 놀랐다. 모든 관광객처럼 관광지인 하바나 비에하만 보고 돌아 갔으면 쿠바에 대한 인상은 가난하고 더럽다였겠지만. 클럽 주변 상류층이 동네 상태를 보니. 쿠바도 잘사는 사람은 잘사는 구나. 싶었다. 이래서 여행을 할때는 현지인을 만나야 한다.

최근에 지어진 클럽에 들어가니 폴댄스를 추는 언니와 관광객이 아닌 현지 노는 잘 차려 입은 언니 오빠들은 다 모여있다. 거기서도 나는 유일한 동양인.

그룹 리더 벤츠 아저씨는 '이구역은 왕은 나야'라는 포스로 웨이터에게 가장 좋은 테이블 좌석을 만들어 내라고 하더니 호기롭게 하바나 클럽 15년 산을 시키셨다. ( 아 진짜 세상 어느 나라라 노는 건 똑같고만) 밤은 깊고, 음악은 쒼나고, 나는 동양에서 온 프린세스 대접이 받고, 엉덩이 뽕과 가슴뽕이 어마어마한 몸에 꽉끼는 원피스를 입은 육덕진 쿠바 언니들은 느끼한 오빠랑 관능적인 살사를 돌리고 있고..... 아 정말... 신기해 신기해....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아서 완벽했던 하바나의 첫 밤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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