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2015년 8월 말에 뉴욕에 왔다. 나는 한국 사람이므로 미국이라는 외국에 체류하기 위해선 합법적으로 그러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 나는 F-1이라는 학생 비자를 통해 미국에 입국했다. F-1이라는 학생 비자에는 다양한 제약이 따르는데, "학생" 비자이므로 i) 취업을 할 수 없고 (CPT라는 제도를 통해 학교 내에서나 주 20 시간 이하로 전공 관련 인턴을 할 수는 있다), ii) Full-time student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 수업의 80% 이상 출석해야 하고, iii) 미국의 출입국시 I-20를 지참하여 F-1 Visa에 따라 학교에 등록 중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삼십대 중반에 처음 유학을 결심하고 한국을 떠나왔을 때 나는 단순했었다. 그냥 한국에서 내 노력으로 주어진 조건에서 해볼건 다 해본거 같았다. 대학원도 졸업했고, 직업적으로 자리도 잡았고 남은 건 남은 숙제는 결혼 밖에 없었다. 임자가 없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하는 압박감도 싫었다. 나는 다음 단계의 challenge가 필요 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든 생각이 그냥 앉아 있는 땅을 바꿔 보지 싶었졌다.
영어는 잘했으니 미국 사는데 두려움은 없었고, 심리적/신체적 체력은 좋으니 낯선 땅에 가도 혼자 독립적으로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나 노력하고 좋은 태도를 가지면 기회가 오겠지라는 막연히 낙천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 직장 생활을 통해 유학 갈 자금은 얼추 만들어 놓은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가볍게 휙 떠났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하는 사람들 보면 다양한 옵션과 리스크를 철저하게 따져서 결정을 내리는데 나는 참 대책없이 엉덩이를 떼고 떠나버렸다. 한국에서 나를 붙잡아 매는 중력은 없었다.
처음 뉴욕에 올 수 있게 한 F-1 학생 비자는 등록금만 내면, 내 돈만 쓰면 나오는 거니 미국으로 오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였다. 홍정욱의 7막 7장을 읽고 자란 세대여서 인지 아이비 리그 대학 유학에 동경도 있었고. Sex and the City로 영어를 배웠던 나에게 뉴욕은 당연한 선택. 나는 진짜 준비성이 없이 그때 그때 Gut feeling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여서, 비자라는 게 향후 내 뉴욕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뉴욕에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방법은 어떻게 든 생기겠지란 단순한 정신 승리만 가득했다. 그리고 너무나 청순한(?)하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산없이 떠나 온 결과로 지난 5년 동안 시행 착오, 금전적 손실, 실망, 좌절, 어마어마한 후회를 겪었다. 만만치 않은 뉴욕 땅을 만만하게 본 나에겐 쓰라린 마상(마음의 상처), 500원 짜리 만한 원형 탈모 땜빵 2개, 일년여를 괴롭힌 불면의 밤이 남았다. 뉴욕은 진짜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다.
흔히들 뉴욕은 기가 센 땅이라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전 세계가 동경하는 세계의 수도. 자본 주의 끝판왕, 욕망의 집결지, 전세계 인재가 몰려오는 세계 경제 문화의 중심지. 응집된 기운과 에너지가 보통은 아닌 땅. 그래서 처음 온 사람들은 꼭 한번은 몸살을 앓고 넘아간다 한다. 이 땅의 드센 기운에 적응하는데 후달려서 그런 것 같다. 이 만만치 않은 땅에 천진만만하게 발을 딛은 내가 H1B와 영주권을 스폰서 해줄 고용주를 찾고 정착하기 까지 시행 착오를 얼마나 많았겠나. 앞으로 이야기는 나의 준비성이 없이 몸으로 부딪기며 겪은 나의 뉴욕 스토리이다. 나 같은 바보 같은 실수를 그 누구는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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